언론보도
2026-10-23

-박성준 법무법인(유한) 대륜 변호사 법률칼럼
사업자가 거래 상대방의 모든 사정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예컨대 장비 설치를 의뢰받은 업체가 그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알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형법상 방조범은 정범의 범행을 알면서 이를 돕는 경우에 성립한다. 이때 인식은 확정적일 필요가 없고 미필적인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그래서 거래 상대방이 나중에 범죄조직으로 드러나면, 수사기관은 거래 당시의 정황을 근거로 사업자가 범행을 인식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통상적인 거래를 이행한 사업자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이 경우 통상적인 영업이 결과적으로 범행에 이용된 때에도 방조범 규정을 적용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된다. 지난 9월 대법원은 사기 조직의 콜센터에 컴퓨터를 설치한 사업자 사건에서 기존 법리를 적용해 이 문제의 판단 기준을 구체화했다.
사업자는 2020년부터 컴퓨터 출장 수리·판매업을 해왔다. 2024년 11월부터 약 6개월간 동창의 부탁을 받아 경기 시흥의 한 사무실에 컴퓨터 등 집기를 설치하고 사무실 이전을 도왔다. 이 사무실은 공모주를 싸게 살 수 있다고 속여 피해자 11명에게서 약 4억2천만원을 가로챈 투자사기 조직의 콜센터였다. 1심과 2심은 사업자가 범행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했다고 보아 사기방조죄를 인정하고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이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형법 제32조는 방조범을 종범으로 보아 정범보다 감경해 처벌한다. 다만 대법원은 정범에게 도움이 됐다는 사정만으로는 방조범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다. 방조행위가 범죄 실현과 밀접하게 관련돼야 하고, 범죄 결과가 발생할 기회를 높이는 등 범행에 현실적으로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대법원 2023. 10. 18. 선고 2022도15537 판결, 대법원 2021. 9. 9. 선고 2017도19025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통상적인 영업이 결과적으로 범행에 이용된 경우를 어디까지 처벌할지는 이 기준으로 가려진다. 학계에서 '중립적 행위에 의한 방조' 문제로 논의해온 쟁점이다.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사업자의 행위가 본업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사업자는 통상적인 수준의 설치대금만 받았다. 범죄수익을 나누어 가졌거나 설치 외에 범행에 따로 기여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고, 거래처 외의 조직원과 연락한 사실도 없었다. 대법원은 이런 사정을 종합해 사업자의 통상적인 영업활동이 범행에 단순히 이용된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고 봤다. 고의에 대해서도 판단했다. 사업의 적법성에 일부 의심이 드는 사정이 있더라도, 그것만으로 구체적인 범행 내용과 피해 발생을 인식하면서 이를 돕겠다는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판결이 통상적인 영업이면 책임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2심은 여러 정황을 근거로 사업자의 인식을 인정했다. 사업자가 거래처 지시로 컴퓨터를 처분하고 저장장치를 초기화했고, 사무실 창문이 암막 시트지로 가려져 있었으며, 보드판에 '비상장주식', '수익률'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는 점이다. 같은 사실관계라도 정황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대법원은 또 법정에서 내용을 부인한 경찰 피의자신문조서를 유죄의 증거로 쓴 점도 잘못이라고 봤다(형사소송법 제312조 제3항 참조). 사건은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심리되므로 고의 인정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기업은 두 가지를 준비해야 한다. 첫째, 거래가 통상적이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거래 목적과 상대방에 대해 확인한 내용, 대가의 수준과 결제 방식, 업무가 본업의 범위 안에 있었는지를 남겨둬야 한다. 둘째, 이상 징후가 있을 때의 대응 절차다. 대금이나 결제 방식이 평소와 다르거나, 거래처가 장비 처분이나 초기화처럼 자료를 지우는 작업을 요청하는 경우가 그렇다. 이때는 요청의 경위와 목적을 기록하고, 필요하면 거래를 중단하거나 법률 검토를 거쳐야 한다. 의심스러운 사정만으로 고의가 인정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구체적인 범행을 알게 된 뒤에도 같은 방식으로 거래를 이어갔다면 그 이후의 행위는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
수사가 시작된 뒤에는 자료 보존이 중요하다. 거래처와 주고받은 메시지나 거래 자료를 임의로 지우거나 정리하면 불리한 정황으로 평가될 수 있고, 별도의 법적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 원본을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 또 피의자신문 단계의 진술은 고의를 판단하는 기초가 된다. 사실관계와 증거를 정리한 뒤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통상적인 영업은 보호하되 범행에 현실적으로 기여한 행위는 처벌한다는 방조범의 경계는 결국 구체적인 정황에서 가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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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활동이 범죄조직에 쓰였다면…대법원이 그은 사기방조의 경계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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